지금은 시험 기간인데 도저히 공부가 안되서 그동안 미루고 미뤄두었던 BC Ombudsperson (BC주 행정감찰실) 에서 일한 경험에 대해 간단하게 후기를 남겨보려고 한다. 우선 나는 2023년 여름학기를 마치고 로스쿨 처음 법관련된 일을 행정감찰실에서 하게 되었다. 공식 타이틀은 Manager of Investigations Assistant (MOIA). 즉 수사를 담당하는 팀장들을 법률 리서치 등으로 보조를 하는 일을 맡았다. 행정감찰실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을거라 생각한다. 특히 Ombudsperson 이라는 단어 자체는 여기 캐나다인들에게도 흔히 듣는 단어는 아닐거라 생각한다. 행정감찰실은 BC주에 존재하는 1,500개 행정기관의 결정을 수사하고 행정권고를 내릴 수 있는 입법부 소속의 독립 수사기관이다. 즉, 입법부 기관이기는 하지만 독립적으로 운영이 된다. 이도 그럴것이 수사를 하려면 공정성이 최우선인데 이러한 독립성이 없다면 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행정 권고를 할 수는 있지만, 행정 명령은 내릴 수 없다. 여담으로 바로 윗층에 있는 Office of the Information and Privacy Commissioner for BC (BC주 정보공개실?) 에서는 administrative tribunal 의 성격을 띠는 준사법기관으로서 행정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과 대조된다. 하지만 행정 권고라 할지라도 행정감찰실에서는 상당히 파급력이 큰 사회적 이슈를 수사하기도 하고 또한 이를 주기적으로 리포트를 발행해 대중들이 볼 수 있게 하기 때문에 (또한 이걸 신문과 같은 대중 매체들이 크게 다룰 때도 있다) 대부분 행정 기관에서는 행정 권고라 할지라도 따르는게 일반적이다.
행정 감찰실에서는 수사를 할 때 여러가지 각도에서 바라보는데 이중에 가장 큰 개념이 “행정적 공정함”이다. 행정법에서 사법심사를 하는데 기준이되는 실체적 심사 (substantive review) 그리고 절차적 공정성 (procedural fairness) 를 합친 포괄적인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즉, 어떤 행정 결정에 있어서 그 결정이 실체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혹은 절차적으로 무언가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그러한 부분을 기반으로 수사를 하고 시정할 수 있게 하는 일을 가장 중점적으로 한다고 보면 된다. 한가지 행정감찰실이 대중에게 메리트가 되는 점은 바로 무료라는 점. 일단 소송에 들어가면 최소 몇만불부터 시작하는 로펌과는 달리 행정 감찰실은 모든게 무료이다.
한가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은 행정감찰실은 엄밀히 말해 법만 다루는 사법 혹은 준사법기관은 아니지만, 거의 99% 의 경우 실제로 법을 해석하고 또 적용해야하는 일이 대부분이다보니 거의 대부분의 Officer 들이 변호사/로스쿨 출신이다. 특히 행정기관의 결정을 수사하고 심사하기 때문에 행정법 관점에서 사건을 프레임 할 수 있어야하고 고도의 법률 해석 및 분석 능력이 필수로 요구된다. 실제로 수사 팀장들은 모두다 변호사 출신이였다. 또한 여기서 말하는 Ombudsperson Officer 는 실제 행정감찰관을 (현재 변호사 출신이신 Jay Chalke 라는 분이 BC주 Ombudsperson 이다) 대신해 대리자격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실제로 Jay Chalke 행정감찰관이 중요한 파일을 수퍼바이징을 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수사를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며 대부분 Officer/Manager 급에서 모든 실무가 이뤄진다고 보면 된다.
좀 재미 없는 이야기일 수 있는데 워낙 흔치않은 기관이다보니 이해를 돕기 위해 많은 설명을 곁들였다.
내가 행정감찰실에서 가장 많이 한일은 두가지다. 의뢰인 응대 및 법률 리서치. 솔직히 의뢰인 응대는 많이 힘들었다. 일단 행정 기관과 마찰이 있어서 그런 고충을 갖고 우리 기관에 오기 때문에 이미 질릴만큼 질리고 빡쳐있는 의뢰인들이 많았다. 물론 내가 첫 응대를 하진 않았고 (이건 intake 팀에서 필터링을 한다) 수사단계직전인 사람들을 응대를 했는데, 우리 기관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수사가 진행 될 것이며 또한 추가 서류 요청 등 관련해서 의뢰인들과 꾸준한 커뮤니케이션을 이어가야했다. 처음에는 좀 익숙치 않은 용어들도 많고 나조차도 우리 기관이 뭘하는곳인지 몰라서 스크립트를 써서 응대를 했고, 나중에는 눈감고도 외워져서 훨씬 수월해진 부분이 있었다.
의뢰인 응대가 매우 중요하긴 하지만 내가 딱히 즐겨한 일이라고 볼수는 없다. 참고로 나는 비밀유지 서약을 세번이나 해야했고, 이러한 이유로 인해 자세한 파일 이야기는 할 수가 없다. 심지어 아직까지 내 아내와도 회사 일 관련된 일을 디테일하게 말해본적이 단 한번도 없다. 어쨌든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는 없지만 내가 응대를 한 의뢰인은 정신적 문제가 매우 심각한 사람이었고 나에게 쌍욕과 협박을 했었다. 하지만 크게 상처를 입거나 그러진 않았다. 오히려 불쌍하다는 연민의 마음이 더 컸다고 생각한다. 어떻게보면 이런 의뢰인보다 말을 한번도 안쉬고 30분을 쓸데없는 이야기를 한다던지, 혹은 헌법 등을 들먹이며 나에게 법 강의를 하는 그런 의뢰인들이 더 스트레스고 힘들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서비스직인 변호사로서 좋은 트레이닝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이보다 내가 훨씬 재밌었던건 법률 리서치였다. 행정감찰실이 정말 좋은점이 1500개가 넘는 행정기관에 대한 관할권이 있다보니 다뤄야하는 법적 이슈가 미친듯이 다양하다. 물론 단골손님처럼 고충이 접수되는 큰 기관들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매우 흥미로운 사건들이 많았다. 하… 비밀유지약정만 없다면 할말이 너무 많은데, 그럴 수 없음에 아쉬울 뿐이다. 어쨌든, 나는 행정법부터 형법, 계약법, AI 법, 로컬 정부 법 (시 등) 등등 정말 다양한 법안을 접했고 이와 관련된 legal memo 를 작성했다. 그중에 가장 기억이 남는건 수사 팀장이 나에게 직접 시킨 리서치였는데, 나에게 신나서 “에이브, 우리가 법무부 자식들에게 우리가 더 똑똑하다는걸 증명할 기회가 왔어” 라며 살펴보라고 한 파일이 있었다. 법무부 소속 기관에서 내린 행정 결정이 법적으로 옳은지 나보고 리뷰를 해보라고 했다. 거진 2주를 매달려서 씨름을 한 것 같은데, 실제 법안과 내부 정책 문서와 또 타 주의 비슷한 판례들을 모아서 행정 명령이 잘못됐다는 취지의 메모를 제출했다. 참고로 또 다른 팀장이 우리 코업 학생들 멘토역활이었는데, 팀장님이랑 미팅을 하는데 나에게 “에이브 – 너가 제출한 메모를 보더니 팀장님이 찬양을 하더라” 라는 피드백을 남겨주셨다. 이후에도 같은 사안 관련해서 추가 리서치 요청이 들어왔고 이 또한 매우 좋은 피드백을 받았다. 결국 해당기관에 작성을 하는 서한에 나의 모든 분석과 워딩이 거의 90% 반영되버렸다. 캬 내가 열심히 분석을 한 내용이 그대로 공식 서한에 들어가는 그 짜릿한 쾌감이란.
대놓고 자랑이긴 하지만 그 이후에도 내가 제출을 하는 모든 메모 관련해서 정말 분에 넘칠 정도의 좋은 피드백을 받았다. 그러다보니 점점 나를 찾는 사람들이 무서운 사람들로 바뀌기 시작했다. 현재 Special Project Manager 로 일하고 있는 전 Executive Director 로부터 행정감찰실의 근간이 되는 법안인 Ombudsperson Act 관련 해석일을 시작으로, 현 Executive Director 리서치 메모, Deputy Ombudsperson 리서치 메모 등등 업무를 수행했다. 특히 우리 부대장인 Deputy Ombudsperson 이 요청한 업무는 Ombudsperson 이 대외적인 주요 인사들과 AI 관련된 법과 정책 관련된 포럼 관련 중요한 업무였다. 이로 인해 Federal Court 에 연락해 AI 관련된 케이스의 파일들을 요청해서 분석하기도 하고 관련 판례 리서치를 해서 메모를 올리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프레젠테이션이었다고 고맙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행정감찰실에서 일을 하며 또 좋았던 점은… 칼퇴를 한다는 것이다. 8시반에 출근에 칼같이 4시에 퇴근했다. 이미 3시 59분부터 컴퓨터를 락을 걸어두고 옷을 입고 짐을 챙겨입고 4시가 되는걸 보자마자 엘리베이터로 뛰어갔다. 4시에 퇴근이라니… 한국 공무원도 이렇게는 퇴근 못할듯.
아 그리고 여기서 일하는게 너무 좋아서 Executive Director 에게 파트로 일해도 되냐고 물었고, 흔쾌히 파트 타임 오퍼를 받았다. 듣기로는 파트 타임으로 계약 연장이 된 학생은 처음이라고 한다 (듣기 좋으라고 한 소리같긴 하지만 기분은 좋았다). 원래 2일 일하기로 했는데, 내가 너무힘들어서 결국 1일로 줄인 상태ㅎㅎ
물론 지금은 RBS 에 취업이 되어있는 상태지만 행정감찰실은 정말 매력적인 곳이다. 물론… 맨날 빡친 의뢰인들과 상대하는건 힘들 수 있겠지만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이 든다. 이건 지극히 내 예상인데… 로스쿨 졸업 후 Officer 포지션 신청하면 높은 가능성으로 될 것 같다. 근데 다 좋은데 연봉이 너무 짜다… 행정감찰실이 법무부처럼 순수 법관련된 기관이 아니다보니, 연봉차이가 꽤 난다. 특히 Legal Services Branch 같은 곳에서 일하면 그래도 10년정도 일하면 20만불 근처까지 가는데, 행정감찰실에서는 10만불초중반 정도될 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변호사 출신들이 일을 하고 있는거보면 확실히 매력있는 일임에는 틀림 없다. 다들 보면 로펌에서 일하다가 질려서 넘어온 케이스가 많았다. 돈을 포기하더라도 좀 더 의미있는 일을 하고, 막강한 권한이 있고, 또 말도 안되는 워라벨에 매력을 느껴 왔으리라 생각된다.
우선 지금은 그저 이런 재밌는 곳에서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는 점에서 매우 만족 스럽다. 마지막으로 코업날 같이 식사를 했던 사진으로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