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의 재판 기록

그동안 로스쿨 다니면서 있었던 여러 이야기들을 기록하겠다고 다짐했건만 쉽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모의 재판이 있었던 날이고 로스쿨 커리큘럼 중에 가장 두려웠던 날이기에 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간단하게 기록으로 남기려고 한다. 

이번 모의 재판에서는 조금 운이 많이 따랐던 것 같다. 일단 유빅에서는 Legal Research & Writing (일명 LRW) 라는 수업에서 모의 재판 (Moot)이 진행 되는데 Open Memo 라는 과제를 기반으로 진행된다. Memo 는 교수님이 제공하는 fact pattern 을 기반으로 내가 직접 판례 연구를 진행하고 이에 관련된 내용을 정리해 놓는 과제를 말한다. 운이 좋았던 점은 교수님이 제공한 fact pattern 을 기반으로 한 비슷한 memo 를 누군가 인터넷에서 찾아서 교수님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급하게 교수님이 다시 문제를 만들어 배포하는 어이없는 일이 일어났다. 이 과정속에서 기존에 세법 관련된 문제가 형법으로 바뀌게 되었다. 나는 범죄학 수업을 통해 다양한 형법 관련된 수업을 이미 학부에서 들어서 그런지 크게 어렵지 않다고 느낀다. 저번학기 미드텀은 심지어 케이스를 거의 읽은 것도 없고 제일 공부를 안한 수업임에도 B+ 를 받았다. 심지어 시험 당일날 독감에 걸려서 될대로 대라하고 시간도 한참 남고 페이지 리밋도 한참 남았는데 그냥 제출해버렸는데도 말이다. 

또한 원래 memo 는 양쪽 의견을 모두 최대한 전개한 뒤 이를 바탕으로 일종의 법률적 조언을 하는건데 (보통 senior lawyer / partner 에게 제출한다고 가정한다) 나는 검사측 의견이 압도적으로 타당하다고 느꼈고 어쩔 수 없이 내용이 좀 한쪽으로 치우칠수 밖에 없었는데, 이번에 모의 재판할때 검사 역할로 배정이 되었다. 

근데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별로 신경을 안쓰는 느낌. 나는 2-3일전부터 밀린 리딩도 내팽개쳐두고 연습 또 연습을 했는데 말이다. 30분도 안봤다는 친구도 있고. 나만 긴장한건지. 

스크립트를 쓰고, 또 고치고 그리고 그걸로 몇번이고 연습하고 머릿속에서 그리면서 예행 연습을 진행했다. 

그럼에도 막상 당일날 모의 재판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내 입술이 바싹 타들어가고, 얼굴은 뜨거워지며, 머릿속은 하예지기 시작했다. 학교에 도착했더니 내 상대 파트너가 기다리고 있었다. 간단하게 서로 이야기 나누면서 잘해보자고 응원했다. 

모의 재판은 생각보다는 informal 했다. 재판의 형식보다는 내용에 집중하고자 하는 느낌이 강했다. 

내 상대 파트너가 먼저 시작했다. 역시 영어가 모국어인 친구다보니 말이 엄청 빠르다. 조금씩 노트를 적으려다가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아 말았다. 중간에 판사님들이 매우 날카로운 질문들을 퍼부었음에도 이 친구는 아주 침착하게, 그리고 센스있게 답변을 하였다. 그때 내게 들었던 생각은 “난 죽었다 깨어나도 저렇게 답변 못할듯.”

그렇게 내 차례가 되었다. 최대한 천천히, 그리고 내가 말하는 메세지를 하나, 하나 전달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때로는 강조해서, 때로는 의문형으로,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잠시 멈추면서. 하지만 검은 머리 외국인 특유의 꼬이는 발음과 중간 중간 내가 들어도 어색한 표현은 어쩔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어색함을 신경쓰기보다는 그저 내가 맡은 파트를 끝까지 마쳐야겠다는 생각으로 집중을 했다.

하지만 중간에 판사님이 정말 뜬금없는 질문을 하나 날리셨는데, 이 질문에 나는 완전 페이스를 날려먹었다. 속으로 나는 “이게 도대체 무슨 질문이지? 이 케이스랑 어떤 연관이 있는거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중에 피드백때 알려주신거지만… 그냥 물어봤단다ㅋㅋㅋ 관련없는 거 맞다며. 어쨌든 최대한 멘탈을 다시 잡으며 다시 페이스를 회복하려 했고, 그렇게 무사히 마칠수 있었다.

판사님들의 피드백. 많은 조언과 과분한 칭찬들을 해주셨는데,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코멘트는 구조에 관한것이였다. 나는 초반과 마지막에 조금은 여운을 남길 수 있는 그런 한번쯤 더 생각해볼만한 그런 policy argument 를 준비했는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건드렸고, 이런 이야기를 한게 내가 처음이었다고 말씀해주셨다. 여운이 남는 그런 코멘트였고 이러한 구조가 아주 인상적이였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아무래도 내 부족했던 부분은 판사님들의 질문을 조금 센스있게 답변을 못했다는점이 가장 컸다. 순발력이 부족하고 또 언어적인 한계로 어쩔 수 없지만서도… 더 좋은 방향으로 성장할수 있게 좋게 피드백을 주셨다. 

이외에도 페이스나, 딜리버리에 대한 부분은 칭찬을 받았고 다만 너무 긴장을 했는지 손 제스쳐가 조금은 산만했다는 코멘트를 받았다. 하지만 내 얼굴이나 목소리톤은 충분히 자신감이 넘쳐서 좋았다고 하셨다.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 여러 아쉬움이 남는게 사실이다. 유빅에서 사실 1년간 친구를 정말 많이 사귀면서 영어가 정말 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아직도 많이 부족한게 사실이다. 웃긴건 영어가 편해지면 편해질수록 한국말이 답답하고 어색하게 느껴진다 (지금도 글을 쓰면서 내가 원하는 표현이 100% 안되서 답답한데 그냥 휘갈겨 쓰는중). 머리가 나쁜건지 하…

아무쪼록 오늘 아주 귀중한 경험이었다고 느낀다. 다만, 내가 과연 송무일을 할 수 있을지는 솔직히 자신감이 없다. 나는 법정에 나가기보다는 클라이언트에게 법률 자문을 하거나 서류작업을 하는게 더 적성에 맞는다고 느낀다. 하지만 가지지 못한 달란트에 대한 갈증은 어쩔수 없나보다. 

계획도 없고 두서도 없이 쓴 글. 하지만 또 언젠간 추억이 될 일이기에 간단히 기록으로 남긴다. 

P.s. 유빅 로스쿨을 선택한건 정말 너무 탁월한 선택이였다. 이와 관련된 글은 나중에 또 써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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